바람따라 국내여행/2009. 정읍/목포/해남

[국내여행/신태인/정읍] 쓸쓸함 안고 무작정 떠났던 여행길의 추억 (1)

멜로우드림 컴퍼니 2011. 10. 2. 16:57


지난 2009년 5월은 내게 있어서 힘든 시간 중 하나였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기에 나는 휴식이 필요했다. 아니 솔직히 휴식보다는 숨어버리고 싶었다고나 할까. 때문에 나는 회사도 한 달 간 쉬기로 결정하고 휴식을 조금 취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집에 있으니 이상하게 더 답답하고 머리만 복잡해지는 것이 아닌가. 쉬기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나는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을 떠나 혼자 여행을 하면 뭔가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았다. 저녁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으로 인해 나는 부랴부랴 배낭을 챙겨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없었다. 돌아올 날도 정하지 않았다. 그냥 발길 가는데로 걷고, 돌아올 때가 되면 돌아오기로 마음 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아니 여행이라기 보다는 솔직히 도피가 맞다. 서울에서의 도피, 현실에서의 도피. 무작정 집에서 나온 나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왠지 기차를 타야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정읍 옆에 있는 신태인이라는 지역에 아는 누나가 살고 있었고,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우가 유명한 그곳에서 그 누나의 어머니는 소고기집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소고기를 얻어 먹고 앞으로의 여정에 쏟을 힘을 비축할 요량으로 신태인 행 기차표를 끊었다. 서울역에서 신태인 행 열차에 몸을 실으면서 나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몰랐다. 맘 속 무언가를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 그렇게도 외로운 여행이 될줄이야. 지독하게 외로운 여행 말이다.





신태인 역에 도착한 나는 마중을 나온 누나를 따라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는 고기집으로 향했다. 마음은 무거워도 배는 고프더라. 맘이 힘들어도 밥만 잘 먹더라. 확실히 한우는 달랐다. 카메라에 고기 사진이 없던걸 보면 나란 놈, 한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었나보다. 육회에 구이까지 먹고 배가 부르니 그제서야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 더욱이나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하니 식당 위층에 있는 방을 기꺼이 내주는데 어찌 고맙지 않을까. 지금에 와서 다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여행의 첫날밤은 밥값 방값 들이지 않고 보낼 수가 있었다.




신태인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고, 정읍 옆에 붙어 있어 서울에서 한우를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서울에 비해 한우 가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여럿이 모여 차를 타고 와서 먹는 것이 서울에서 먹는 것보다 적은 비용이 든다. 하루 정도 가족 또는 친구들과 바람쐬러 기차타고 와서 한우를 먹고 가는 것도 매우 좋을 것 같다. 기차를 타야 된다. 차를 가지고 오면 운전하는 사람은 술을 먹지 못하니까 말이다. 당일치기로 갈 생각이면 무조건 기차를 타고 가라. 하하하하하.




밥을 먹고 방에 짐을 풀은 나는 소화를 시킬 겸 산책을 나갔다. 신태인은 그리 크지도 않고, 번잡하지도 않은 작은 농촌 마을의 분위기였다. 논과 밭이 있고,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들이 듬성듬성 있는 그런 전형적인 농촌의 느낌말이다. 길도 모르던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길들을 기억해서 그대로 돌아올 심산으로 계속 걷기 시작했다.




무작정 걸으며 마을 이곳 저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위 소나무는 밭 안에 있었는데, 원래 소나무가 있던 곳에 밭을 일군건지 아니면 밭을 일군 후에 소나무를 심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가 맞기를 바란다. 자라나는 소나무를 피해 밭을 일군 농촌 인심을 소개하면 왠지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마음이 훈훈해지니 말이다.




사진이 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걷다가 혼자 찍는 셀카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나에 대한 기록이다. 마음은 무거워도 셀카는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찍어줘야 한다. 첫날은 이렇게 셀카도 남겼건만, 여행이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내 사진은 찍지 않게 되더라. 셀카를 찍으면 항상 비슷한 표정에 배경만 바뀌는 기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셀카는 한 장으로 부족하다. 여러 장을 찍어야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 한 두장 건지는 것이 셀카다. 2% 부족한 사진작가들의 작품세계와 똑같다. 자연스럽게 나온 사진은 이상하다고 여기며 삭제하고, 실제와는 다르게 잘 나온 사진은 제대로 나왔다며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린다. 그것이 셀카다. 하하하하하하.




무작정 계속 걷다 보니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앞에는 크지 않은 강이 하나 나왔다. 강의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그냥 뭔가 한적해 보이기에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차도 많지 않았다. 멋있는 말을 적고 싶지만, 솔직히 저곳까지 걸어갔을 때 나는 혹시나 돌아가는 길을 까먹지 않았을까 두려운 마음이 조금 있었다. 그래서 후딱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몇 장 찍고는 금새 발길을 돌렸다.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하늘과 강이 마치 데칼코마니로 찍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으로 보면 꽤나 괜찮은데 실제로 그리 맑은 강은 아니었다. 뭐랄까 그냥 동네에 흐르는 개천같은 느낌인데 폭이 크다고나 할까? 그래도 낚시대를 놓으면 붕어 같은 민물고기들이 많이 잡힐 것 같더라. 생뚱맞은 소리긴 하지만 갑자기 밤낚시가 가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쳤던 마을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마을이름이 '용서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잘못을 많이 했으면 마을이름조차 용서마을일까? 처음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실없이 웃어댔다. 하지만 조금 더 걸어가다가 본 마을 지도에는 용동마을도 있더라. 즉, 용서를 구한다에 용서가 아니라 서쪽에 있어서 용서마을이고, 동쪽에 있는 마을은 용동마을이었던 것이다. 아...재미있다가 말았다.


여하튼 혼자 무작정 떠난 여행의 첫날밤은 저렇게 지나갔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자리에 누웠다. 밥이며 잠자리며 신세를 진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거니와 조금이라도 더 걷고 움직여야 잡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아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신태인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당시 나는 불면증으로 엄청 고생을 하고 있던지라 깊게 잠들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밤새 뒤척이며 눈을 떴다 감았다를 수십번 반복하니 어느덧 아침이 와있었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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