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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영광/법성포] 쓸쓸함 안고 무작정 떠났던 여행길의 추억 (5)

멜로우드림 컴퍼니 2011. 10. 5. 14:29


서울을 떠난지 3일차. 여전히 비가 내렸다. 날씨마저도 어찌 내게 시련을 준단말인가. 여인숙에서 나온 나는 버스 터미널 앞 국밥집에 들러 국밥을 한 그릇 시켰다. 비 오는 날 아침에 먹는 국밥은 정말 꿀맛이더라. 밥을 다 먹고나서야 이제 어디로 갈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다음 목적지에 대해 큰 고민은 들지 않았다. 대충 버스 시간표도 보고 지도도 보고 하다 결국에는 전남 영광에 가기로 했다. 영광에 갈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생각나길래 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획 없는 여행의 매력 아닐까. 기약없이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그런 '무작정'의 여정.




정읍에서 버스를 타고 얼마 정도를 달렸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버스는 달리면서 몇 곳의 터미널을 거쳤고, 마침내 나는 영광에 도착했다. 영광에 도착했으니 이제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할까? 영광 시내에서는 그닥 할만한 것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터미널에 앉아 잠시 생각을 하던 나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굴비의 마을 '법성포'.




영광 하면 굴비고, 굴비 하면 법성포가 아닌가. 말로만 듣던 법성포에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나는 영광 터미널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법성포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버렸다. 가서 영광굴비 맛을 볼 생각에 조금은 들떠 있던 것도 사실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기에 터미널 근처를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터미널 근처는 재래시장의 느낌을 풍겼다. 완벽한 재래시장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점포들이 그러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바닷가 근처인지라 해산물을 파는 곳이 많았다. 오징어, 광어, 우럭, 대하, 백합, 가오리, 말린 문어 등등 수 많은 해산물들 널려있었고, 바닷가나 수산시장에서 맡을 수 있는 비릿한 짠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져 나는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대합실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타지 사람들도 섞여 있었겠지만 대부분이 현지 주민들처럼 보였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다소 정겹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법성포로 향했다. 약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가 지나니 법성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빗방울은 계속 떨어졌다. 망할 놈의 날씨 같으니라고.




버스에서 내린 나는 일단은 무작정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썰물 때라 그런지 물이 모두 빠져 포 주변은 갯벌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힘든 허름한 어선들이 물 빠진 갯벌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수 많은 갈매기들이 날거나 걷거나를 하고 있었다. 아 근데 갈매기 이 놈들은 왜 걸어다니는데.










물이 빠져 갯벌을 훤히 드러낸 선착장 건너편에는 영광 법성포의 명물 '굴비'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다. 여기는 굴비유통, 저기는 굴비상회, 그 옆은 굴비센터, 온통 굴비 천지였다. 간혹가다가 굴비를 사러 온 듯한 외지인의 차가 지나가긴 하였지만 이상하게 여기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더 외롭게 만들려는 하늘의 장난인건지 구분이 가지 않더라. 광합성은 바라지도 않으니 비나 좀 멈췄으면 했다.









많은 가게들이 밖에 엮은 굴비를 걸어 놓고 있었다. 말리려는 심산인지, 아니면 팔기 위해 걸어 놓은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것이 뜨거운 밥 한 숟가락에 먹으면 맛있겠다는 것은 보기만 해도 알겠더라. 굴비를 보니 허기가 지기도 했지만 일단은 조금 더 주변을 걸어보기로 했다.




사진을 찍으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저 멀리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이 등대 같기도 하고, 무슨 사원 같기도 하여 카메라 줌을 당겨보았다.




그것은 바로 불상이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보일 정도라면 분명 꽤나 큰 불상임에 틀림 없었다. 근데 왜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에 저렇게 큰 불상이 있는걸까? 그냥 일반 절에 있는 불상이라고 하기에는 분명 느낌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법성포에 유명한 절이 있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불상을 확인하기 위해 가고 싶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 비, 비, 비.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소리마저도 둔탁해졌고, 바람까지 거세게 불었다. 바람때문에 비는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고작 오후 3시정도였지만 하늘은 어둡기만 했다. 때문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일단 오늘은 숙소를 잡아 쉬기로 마음 먹었다. 근데 오늘은 어디서 자지? 내가 걸어왔던 길에 여관 하나라도 있었던가? 분명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한 동안 주위를 방황하다 나는 결국 눈 앞에 보이는 파출소로 들어갔다. 우리 민중의 지팡이 분들에게 혼자 도움을 청했다. 혼자 여행을 왔는데 근처에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었다. 그 때 이미 밖에 내리던 비는 꽤나 거세져 있었다. 파출소에는 두 분의 순경이 계셨는데 멀지 않은 곳에 모텔이 하나 있다고 하더라. 잠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순경 분들은 밖에 비도 오고 하니 차로 모텔까지 태워준다고 하셨다. 뜻밖의 호의였다. 순찰차를 얻어탄 나는 금새 모텔 앞에 도착할 수 있었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리는 내게 순경 분은 남은 여행 잘 하라는 인사를 건내주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나온 나는 밥을 먹어야겠다는 긴박감을 느꼈다. 위험했다. 배고픔은 분명 위험하다. 하하하. 비가 많이 오니 멀리 가기는 어려울거라 생각했는데 마침 모텔 바로 앞에 굴비 정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당연히 큰 고민 없이 들어갔다. 굴비 정식이 1인분에 만 오천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하하 이럴 때 보면 내 기억력 제법 굳이다). 여행 와서 비 때문에 낮부터 방콕 신세가 되었으니 밥이라도 맛있게 먹자는 생각으로 굴비 정식으로 시켰는데, 아주머니가 안된단다. 굴비 정식은 2인분부터 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 아 혼자면 밥도 먹고 싶은대로 못 먹는구나. 슬프다. 말도 안되는 룰이다. 흑흑흑흑흑흑. 나는 그냥 된장찌개를 먹고서는 우울한 마음에 또 맥주 몇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창 밖으로는 밤 늦도록 빗소리가 퍼졌고, 굴비 마을에 와서 굴비도 못 먹은 나는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다 잠들어버렸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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