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캐나다/밴쿠버] 밴쿠버정착기 (1) - 곰돌씨, 밴쿠버로 날아가다
2011년 1월 23일, 나는 서울을 떠났다. 단지 서울을 떠난 것이 아니라 답답한 한국을 벗어나 밴쿠버로 향했다. 다른 누군가들처럼 영어공부나 며칠 간의 여행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는 가장 큰 목적은 답답한 한국을 벗어남에 있었고, 그 다음은 내 자신 스스로를 환기시킬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해서였다. 그 경험이 일이든, 여행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 되든 간에 말이다.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은 다음에서야 기왕이면 영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얼마 간의 고민을 통해 결국 목적지를 밴쿠버로 정하게 되었다.
나는 일본항공(JAL)을 이용하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날도 정하지 않았고 또한 무조건 밴쿠버에서 돌아올 것이라는 계획도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에 편도 항공권만을 구매하였다. 여러 항공편을 비교했던 결과, JAL이 가장 저렴하였다. 보통 에어차이나나 동방항공 등이 더 저렴하지만 내가 출발하려는 날짜에 저렴한 좌석은 이미 없는 상태였다. 에어차이나에 좌석이 있었더라도 나는 JAL을 예약했을 것이다. 에어차이나의 서비스는 '메이드 인 차이나'니까. 흐흐흐흐.
일본항공은 한국-밴쿠버 노선에서 일본 나리타를 경유한다. 때문에 나는 나리타에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만약 밴쿠버까지 아시아나를 이용할 경우에는 시애틀을 경유하게 되고, 에어차이나는 베이징을, 동방항공은 상하이를 경유하는 것이 한국과 밴쿠버 간의 일반적인 항공 노선이다. 물론 대한항공이나 에어캐나다는 경유가 필요없는 직항 노선이다.
그 날 나는 꽤나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했다. 아마 4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던 것 같다. 원래 성격이 뭐든 아슬아슬한 것 보다는 확실하게 여유있는 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성격은 시험공부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도착한 탓인지 JAL 데스크 주변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짐을 최소화 하기 위해 캐리어 하나와 배낭 하나만으로 짐을 꾸렸다. 원래 JAL은 23kg짜리 수화물 두 개가 무료였지만 캐리어를 두 개나 끌면 캐나다 현지에서 이동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때문에 나는 추가 비용을 내기로 하고 캐리어 하나에 짐을 모두 쌌다. 무게는 30kg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23kg를 넘겼기 때문에 지불해야 했던 추가 비용은 5만원 정도였나? 얼마였더라? 가물가물 가물치...
나는 밴쿠버 다운타운으로 가니까 가방도 다운타운이다?!?!?!? 하하하하하하. 동대문에 가서 싸고 괜찮은 배낭을 찼다가 고른 놈인데, 사고 나서 보니 다운타운이라고 적혀있더라. 로고는 산인데 왜 다운타운이지?
내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을 적은 배기지 택. 배기지 택도 아무거나 사지 않고 귀여운 놈으로 골라주는 나의 센스는 정말 칭찬받을만 하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욕 하겠지? 하하하하하.
한 번 이상을 갈아타야 하는 항공 노선의 경우 수화물이 비행기를 옮겨 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므로 이름과 주소가 적힌 택을 짐에 꼭 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짐을 잘 구별하기 위하여 택은 눈에 잘 띄는 디자인이 좋다. 물론 손수건이나 다른 표식을 달아놓는 것도 좋고 말이다.
어느 새 JAL 데스크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다. 데스크에서 티켓을 받은 나는 출발 시간이 어느 정도 가까워졌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공항에 와서인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서둘러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게이트를 들어가 검색대도 무사히 통과하였다. 면세점에 큰 볼 일이 없었던 나는 매장들을 대충 훑어보고는 JAL이 들어오기로 한 113번 탑승장으로 이동하였다. 아직 비행기가 출발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었으므로 나는 의자에 앉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한국에서의 마지막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24일부터 중지 신청을 했기 때문에 공항에서 마지막까지 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탑승구 전광판에 항공 정보들이 나온다. AA5850은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항공편 명이고, DL158은 델타 에어라인의 항공편 명이다. 둘 다 미국의 저가 항공편으로, 특히 미국 내 노선이 저렴한 편이다.
탑승 시간을 기다리다 창 밖을 봤는데 갑자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분명 아침에 나올 때에는 맑은 날씨였는데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바람이 세게 부는지 눈은 옆으로 휘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활주로는 눈보라로 뒤덮혔고, 멀리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혹시나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이륙을 못하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하지만 별다른 안내 방송이 없었으므로 일단은 차분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출발부터 이러면 안되는건데. 아, 갑자기 한숨이 나오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눈보라는 더 거세졌다. 아, 젠장. 다행히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탑승구가 열리고 승객들이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별 탈 없이 비행기가 뜨는구나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비행기는 이륙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밖에서는 기체 외부에 쌓인 눈들과 창에 얼어 붙은 얼음들을 계속 치워내고 있었다.
결국 비행기는 한 시간 반이 넘어서야 기체를 흔들거리며 이륙 준비를 했다. 출발이 지연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륙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감사함도 잠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출발이 지연된 탓에 나리타에서 밴쿠버 행 항공편으로 갈아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비행기 내에는 나를 포함하여 밴쿠버 행 항공편으로 갈아타야 하는 사람들이 4명 정도 더 있었는데, 스튜어디스는 우리를 불러 모아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시간이 없으니 나리타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손님들보다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또한 스튜어디스 한 명이 우리에게 따라 붙어 밴쿠버 행 항공편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안내를 해준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아, 완전 밴쿠버로 가는 시작이 순조롭지 않다. 그래도 이거 왠지 스릴있는데? 하하하하. 드디어 비행기가 나리타에 도착하였고, 밴쿠버 행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뛰기 시작했다. 나도 뛰고, 그들도 뛰고, 스튜어디스도 뛰었다. 다행히 검색대도 빠르게 통과하였고,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가까스로 밴쿠버 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다시 이륙을 하고난 후에야 안도에 한숨이 나왔다.
밴쿠버로 날아가는 동안 처음으로 먹은 기내식이다. 도시락 사이즈가 상당히 소박하다. 무게도 가볍다. 내 시각과 다른 감각기관들을 통해 나는 도시락이 부실하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많이 주면 좋은데. 일단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도시락 왼쪽에는 밥 위에 계란 노른자와 갈은 고기가 올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삶은 당근과 오이 장아찌, 그리고 우묵인지 곤약인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가운데 위쪽에 있는 것은 달달하긴 했는데 푸딩인지 젤리인지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더라. 오른쪽에는 밥 위에 연어 한 점이 올려져 있다. 아, 한 조각이다. 난 100조각도 먹을 수 있는데. 맛이나 양 모두 추천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었다.
밴쿠버로 날아가면서 저녁시간이 되었을 때 먹었던 두 번째 기내식이다. 그나마 점심식사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두 가지 메뉴가 있었는데 나는 사진에 보이는 오믈렛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레드 와인도 한 병 부탁했다. 야채와 연어 샐러드, 그리고 후식으로 먹으라고 준 듯한 카스테라 비스끄무리 한 작은 빵도 있다.
기내식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와인과 맥주다. 하늘에서 먹는 공짜 와인과 맥주. 하하하하. 뭐 솔직히 공짜는 아니다. 내가 지불한 항공비에 다 포함되어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와인이나 맥주를 마셔줘야 하는 것이다.
연어가 리필이 되었더라면 더 좋았으련만. 흑흑흑.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들 시간에 문제가 하나 생겼다. 어디선가 역겨운 냄새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내 앞에 앞에 앉은 한 외국인이 저녁 식사 때 와인을 먹고 취해서는 결국에 토를 한 것이다. 덕분에 내 좌석 부근에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내 앞에 앉아있던 승객들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술을 곱게 마실 것이지, 비행기에서 저게 뭐람. 바닥을 치우는 스튜어디스들이 불상해 보이더라. 장갑을 끼고는 다른 승객들이 깰까봐 손전등으로 비춰가며 바닥을 치우고, 게다가 취해서 토를 싸질러 놓은 놈도 승객이라고 챙겨야 되니 말이다. 아오,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비행이었다. 40분 정도가 지나서야 사태가 일단락 되었고, 모두들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밴쿠버로 가는 설레임 때문인지, 자리가 불편해서인지 나는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뒤척이다 영화를 보고, 다시 뒤척이다가 눈을 감고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 아침 기내식이 나왔다. 곧 있으면 밴쿠버에 도착하는가 싶었다.
일본항공의 아침 기내식은 초절정 조촐하다. 빵과 요거트, 과일, 쥬스가 전부이다. 이건 그냥 간식이다. 맞다. 간식이었던 것 같다. 아침식사를 이렇게 줄리가 없다. 흑흑흑. 하지만 아침 식사가 맞다. 승객들의 건강을 위해서 일본항공이 소식을 권장하는 것 같다. 하하하하하하.
요거트는 포장지 색을 보니 왠지 와사비 맛 날 것 같다. 실제로는 그냥 요거트이다. 하하하하하.
과일도 조촐하다. 멜론 한 조각, 사과 한 조각, 황도 한 조각....
잠시 후 비행기가 밴쿠버 국제공항에 착륙하였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은 후에 이민국 사무소에서 비자를 받았다. 합법적인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하하하하하하. 내가 캐나다에 왔다. 밴쿠버에 도착했다.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했지만 잠을 못 잔 탓에 머리는 멍했다. 확실히 이래저래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게이트를 빠져 나온 나는 공항에서 어떤 한 분을 기다렸다. 내가 기다린 분은 전 캐나다 태권도협회장을 지내신 하기승 사범님이다. 한국에서 태권도진흥재단의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할 때, 캐나다 태권도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이메일과 전화로 이래저래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내가 밴쿠버에 간다는 말씀을 드리자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를 픽업하러 나와주신다고 하신 것이다.
나는 하기승 사범님의 배려로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밴쿠버에서의 첫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하 사범님의 차를 타고 나는 다운타운에 있는 유스호스텔로 이동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에 방을 잡지 못할 걱정은 없었다. 일단 그곳에서 며칠 머물며 시차적응도 하고, 앞으로 생활을 할 집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곰돌씨의 밴쿠버 라이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