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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국내여행/2009. 정읍/목포/해남

[국내여행/해남/땅끝] 쓸쓸함 안고 무작정 떠났던 여행길의 추억 (14)



서울을 떠나는 나는 어느덧 한반도의 최남단인 땅끝마을까지 왔다. TV나 잡지에서 보면서 언제 한 번은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을 무작정 집에 뛰쳐나와 오게 되다니. 하하하하하. 해남 버스 터미널에서 땅끝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드디어 땅끝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오니 '한반도 최 남단 땅끝'을 알리는 석판이 있다. 이곳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이 돌 앞에서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땅끝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상하게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다들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하하하. 구경을 하는 동안 그저 몇 명의 관광객들만이 눈에 보일 뿐이었다.




앞에는 선착장이 있었다. 선착장 옆으로는 바닷물이 조금 빠져 뻘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위에는 희한한 모습의 바위들이 있었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바위는 사진작가들이나 관광객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일출이나 일몰 때에 저 바위 사이로 노을이 물드는 것을 보면 장관이기 때문이다.






이 바위의 이름이 촛대바위였는지 아니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근처 안내판에 바위 이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하다. 비루한 뇌활동이여, 나의 뉴런이여. 여하튼 이 바위도 멋져보이길래 사진으로 남겼다.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다. 마치 고대의 유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도 크고, 코도 크고, 목은 짧고, 어깨도 좁고, 전형적인 대두의 모습이다. 이 바위가 다른 사람들 눈에도 사람을 닮은 것 처럼 보일지는 모르겠다. 모든 자연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 눈에는 사람이다. 사람. 대두. 컬투. 배기성. 하하하하하.






저 멀리 산 꼭대기에 전망대가 보인다. 저곳에 올라가면 땅끝마을 주변과 바다가 한 눈에 보일 것이다. 저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물론 길을 따라 걸어서도 갈 수 있다. 모노레일의 경사와 걸어올라가는 길 모두 높은 곳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 흑흑 ㅠ.ㅠ






한 쪽 방파제에는 등대가 있다. 저 등대 역시 관광객이 사진 찍기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등대 안쪽에는 수 없이 많은 낙서들이 있었다. 인간은 왜 그리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밤이 되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면 또 다른 분위기가 날 것 같았지만 밤까지 기다리기는 조금 지루할 것 같았다.




선착장 옆으로 진짜 땅끝을 향하는 산책로가 산을 따라 나있었다. 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아까 보았던 전망대에까지 갈 수 있다. 길은 무척이나 잘 가꾸어져 있었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오니 아까 밑에서 보았던 바위가 보인다. 이렇게 보니까 느낌이 다른다. 그저 바위일 뿐인데 마치 로빈슨 크루소가 살았던 무인도를 연상케 한다. 그가 살았던 무인도가 어찌 생긴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보인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씽크빅 돋는 남자니까. 하하하하.






신선 놀음 하기에 좋아보이는 정자가 바다를 향해 자리잡고 있다. 법성포의 숲길에도, 외달도의 언덕에도, 유달산 언저리에도, 그리고 땅끝인 이곳에도 전망이 좋은 곳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좋은 경치 보면서 쉬고 싶은 욕구는 어딜 가나 똑같나보다. 볼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저기에 상 차려놓고 백숙과 빈대떡에 소주 한 잔 마시며,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 한 곡조 뽑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단, 혼자 말고 여럿이서.




길은 무척이나 잘 조성되어 있었다. 법성포에서 봤던 한국의 10대 아름다운 숲길보다 나는 땅끝의 산길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바닷물도 역시 남해가 더 맑다. 외달도의 바다도 맑았지만, 이곳 해남에서 접하는 바닷물의 색깔은 차원이 달랐다. 마치 속이 곽 차있는 에메랄드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길을 따라 걷다보면 모노레일의 시작점을 볼 수 있다. 매점과 함께 있는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으면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모노레일을 아무 때나 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시간에 맞춰 순환하기 때문에 시간표를 보고 맞는 시간에 탑승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타지 않았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여행은 걸으며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다. 걷고 싶었다. 안 무섭다. 하하하하. 마이클 제길슨.




모노레일 매표소까지 이어지던 보도블럭은 사라지고 흙으로 다져진 길이 시작되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주었고, 바람은 선선했다. 가끔씩 들리는 새소리가 나무들 사이에서 크게 울려퍼졌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남해가 아름답다. 산과 바다.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가장 조화로운 모습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바닷가 뒤에 펼쳐진 숲, 숲 사이로 보이는 바다. 땅끝에서 마주한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전망 좋은 절벽에 또 하나의 정자가 있다. 이번 정자는 신을 벗고 올라갈 수 있는 평상이 아니라 벤치들이 있었다. 특히 바다를 보며 앉을 수 있는 벤치는 연인들에게 최고의 데이트 장소이다. 높은 곳에 있거나 약간의 무서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도록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앞이 절벽인 저 곳은 딱인 것이다. 게다가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숲 속의 시원한 공기는 가슴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연인들이여 모두 향하라, 해남으로, 땅끝으로. 그곳에서 당신들의 사랑이 꽃 필지니. 하하하하.






나는 한참을 숲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바다를 보고, 기암절벽을 보고, 나무들을 봤다. 그렇게 걷는 중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거지?' 혼자 걸으며 아무리 아름다운 절경들을 본다한들 다른 이들은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을 떠났다 하더라도 나를 지켜보는 시청자는 없으니,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걷고 있는 중에도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친구나 가족, 연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무엇보다 친구 녀석과 소주 한 잔 하고 싶어졌다.




나는 땅끝의 숲길을 걷다 문득 친구 녀석과의 소주 한 잔이 그리워졌고, 그 길로 서울로 향했다. 떠난 것도 무작정이었지만 돌아오는 것도 참 대책 없이 무작정이었다. 땅끝의 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슈퍼에 들려 음료수 하나를 사가지고 나오는데 바로 앞에 백구 한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녀석, 천하태평이다. 주는 밥 먹고, 졸리면 자고, 짜증나면 짖고, 짖다가 맞고?!?!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듯 하다.


잠시 후 나는 버스에 올라 해남 버스 터미널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광주까지 이동하여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왔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은 깊어 있었다. 퀘퀘한 서울 공기와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가 서울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었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서울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놈과 소주 한 잔 하고 싶었지만 몸이 피곤한 나머지 그날은 집으로 바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참으로 외롭고 웃기지만 나름 괜찮았던 이상한 여정이었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이렇게 기억에 많이 남으니 말이다. 만약 누군가 혼자 여행을 떠나려 한다면 한 마디 해주고 싶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얻는 것도 많을테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더 클 것이라고.



쓸쓸한 마음으로 무작정 혼자 떠났던 여행길의 추억, 여기서 끝.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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