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으로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던 나는 아침을 먹고 잉글리쉬 베이로 산책이나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밴쿠버의 겨울날에 비가 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거리에는 우산을 쓴 사람보다 고어택스 점퍼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비가 와도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한다. 날씨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한국처럼 장대비가 오는 날씨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아침밥을 먼저 먹기로 했다. 나는 밴쿠버에 사는 사람이니까 서양 사람처럼 아침밥을 먹어주셨다. 바게트 두 조각과 딸기잼, 계란프라이 두 개, 햄 세 조각과 미리 만들어 놓은 닭가슴살 샐러드, 그리고 사과 주스와 후식으로 먹을 레드 오렌지까지 준비하였다. 깔끔한 식단이긴 하지만 역시 금방 배고파지더라. 하하하하하하하.
밥을 먹고 샤워까지 마친 나는 가벼운 차림으로 잉글리쉬 베이로 향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씨가 아니었기에 우산은 가방에 넣고, 그냥 모자를 쓰고 돌아다녔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도 빗발은 굵어지지 않았다.
잉글리쉬 베이 앞에 오니 기이한 웃음을 짓고 있는 동상들이 모여있다. 대체 뭘까? 잉글리쉬 베이 입구에 세워놓기에는 너무 뜬금없는 조각상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혹시 안내판이 있을까 두리번 거렸다. 역시나 동상 옆에는 작품 설명이 적혀있는 안내판이 있었고, 나는 왜 이 조각상들이 여기 서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조각상들 역시 밴쿠버 비엔날레 출풀작이었다. 밴쿠버 내에는 총 34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인 것이다. 잉글리쉬 베이 입구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있는 이 조각상은 'A-maze-ing Laughter'라는 작품이다. 이는 중국 베이징 출신의 'Yue, Minjun'이라는 아티스트의 작품이라고 한다. 초승달처럼 갈라지는 눈주름과 히스테리한 웃음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아이콘화 하여 묘사했다나 어쨌다나. 이렇게 웃는 모습은 작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한다.
익살스러운 표정 때문에 잉글리쉬 베이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 사진을 찍고, 또한 그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나는 조각상 사진만 찍었다. 왠지 내 사진을 찍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냥 그랬다. 절대로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사진 찍기 싫었다고. 아 현기증. 하하하하하하하하.....
비 오는 날의 잉글리쉬 베이는 한적하기만 하다. 바다 멀리에서는 태평양을 건너 밴쿠버로 들어오는 많은 배들이 보이고, 구름 넘어로는 노을이 져가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날씨였다.
잉글리쉬 베이로 산책을 갔던 이 날,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뭐랄까,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잉글리쉬 베이 앞 스타벅스는 역시나 사람이 가득 차있더라. 밴쿠버 다운타운에는 정말 한 블럭 건너마다 스타벅스가 있다. 거지들도 커피를 즐기는 나라다. 대단한 커피 사랑.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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